critic

당신으로부터 나의 거리

안종현展 / ANJONGHYUN / 安鍾現 

안종현_멀리 가까이 중간_DMZ- #01_울트라크롬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280×370cm_2020
안종현_멀리 가까이 중간_DMZ- #02_울트라크롬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280×450cm_2020

‘동시대 미술’의 담론이 등장하면서 대두되는 이슈들은 대부분 미술과 장소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시 서문이나 기금신청서, 각종 리뷰에서 나오는 미술과 장소의 관계는 ‘장소 특정적’이라는 단어로 예술이 장소를 바라보는 데 있어 사회적인 의식이 있고, 정치적으로 참여한 미술 실천으로 이어지는 의미로 여겨졌다. ‘미술’과 ‘장소’는 건축, 디자인, 도시 이론과 맞물리면서 사람들의 삶이 묻어나는 과정이 곧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관계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단어가 된 것이다.1) 이것을 먼저 언급한 이유는 안종현의 작업이 현상학적, 심리적으로 경험한 장소, 개인의 삶에서 묻어나온 감정이 어느 순간 사회의 거대담론과 접속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 안종현의 『당신으로부터 나의 거리』는 한 개인이 경험하고 느끼고 있는 물리적인 장소가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이 반복되는 역사적인 현상과 연결되는 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안종현은 「통로」(2015), 「미래의 땅」(2013) 시리즈에서 이미 작가가 일상에 서 경험하고 있는 곳, 혹은 흔적만 남겨진 곳을 다시 바라보는 작업을 하여 왔다. 「통로」(2015)는 매일 같이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으로 향하는 길을 다양한 시간대에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재인식하게 된 종로의 모습이다. 종로의 한 거리가 누군가에게는 출근길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가족을 돌보러 지나가야 하는 심리적인 공간이 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더불어 신작 시리즈인 「시작의 불」(2019)에서 거대한 산불이 남기고 간 흔적은 모습은 시커멓기도 하면서 숱하게 많은 사연과 기억을 묻음과 동시에 앞으로의 삶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작가는 시간과 공간이 한 장면에 축적되어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의 영역에 고스란히 집합되고 물리적으로 모든 것이 다 타버린 공간에서 다시 사회적인 관계망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는 순간을 포착한다.

안종현_멀리 가까이 중간_DMZ- #11_울트라크롬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15×155cm_2020

「멀리 가까이 중간」(2020)은 수년째 개인의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는 심리적인 거리를 역사적인 잔상에 빗대어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무척 돈독한 것에 비해 작가의 삶에서 아버지는 왕래가 없는 낯선 존재였다. 얼굴도 닮지 않았고 언제나 거리감이 느껴지는 가족 관계에 대한 심리상태는 마치 미군이 남기고 간 흔적들, 시스템, 건물의 모습, 북한과 남한의 생태가 뒤엉켜 있는 모습이 어떤 때는 내 일인 것처럼 가깝게 느껴지거나 갑작스럽게 남일인 듯 바라보는 마음과도 닮아있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몇몇 가지의 장면들은 오히려 초현실적으로 보이고, 때로는 손에 잡힐 듯 가깝지만 떠내려온 강물 속 의자처럼 잘 닿지 않는다. 여기에서 보이는 DMZ, 미군기지, 미국이 지은 정신병원은 나의 삶과 남의 삶을 끊임없이 이어붙였다 떼었다를 반복하는 장소들이다. ● 안종현의 작업은 낭만주의 시대 풍경화나 무한한 것을 동경하는 감정적인 태도에서처럼 바라보는 과정에서 오는 압도감과 숭고한 감정을 먼저 끌어들여온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아 무성하게 자란 숲과 덤불은 섬세한 초록의 힘으로 보여주고 경계가 지워진 듯 단단한 밧줄은 마음의 거리와 마주하는 풍경을 동일시한다. ‘심리적 거리’라 함은 시간의 멀고 가까움을 뜻하는 시간적 거리, 공간이 떨어져 있음을 뜻하는 공간적 거리, 인간관계의 친밀함을 보여주는 사회적 거리, 자신의 주변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발생확률적 거리로 나뉜다. 「멀리 가까이 중간」은 작가와 아버지의 지난 수년 간의 일들이 거짓말처럼 갑자기 찾아온 특정한 사건들, 과거의 일들이 지금의 사건으로 확장되는 연속적인 일들이 뒤섞여 시간과 공간, 관계,가능성이 한 순간에 집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렸을 적 있었던 일들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 희미하지만 어느덧 작가의 몸과 마음에 체화되어 있고, 체화된 지금의 상태는 미래의 행동과 결정에 영향을 준다. 안종현은 관찰자와 행위자의 역할을 오고 가면서 구체적인 상황과 저 너머의 풍경에서 오작동과 균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 고윤정

* 각주1) 권미원 지금, 『장소 특정적 미술』, 현실문화연구, 2013, pp12-14.

안종현_멀리 가까이 중간_DMZ- #15_울트라크롬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15×155cm_2020
안종현_시작의 불 – forest #18_피그먼트 프린트_140×185cm_2019

가까이 혹은 멀리 ● 전시장에 들어서서 맨 처음 마주하는 이미지는 관객에게 관상의 출발점을 제시하는 동시에 향방을 결정하곤 한다. 안종현 작가는 전시의 첫 작품, 「멀리 가까이 중간_DMZ-#01」이1) 벽면을 가득 채울 정도의 크기라 했으니 작품이 관객의 시야를 가득 채우길 원했을 텐데 이 글을 위해 미리 전달받은 이미지는 고작해야 나의 모니터를 채울 수 있을 뿐이다. 작가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겠지만 모니터에 눈을 최대한 가까이 갖다 대볼까? 내가 열어본 첫 이미지 또한 전시 전체에 대한 나의 해석을 결정해버렸다. 맨 처음 머리에 떠오른 문장은 “피사체가 없다”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 하자면 주인공으로 보이는 피사체가 없어 보였다. 화면 대부분은 짙은 녹음으로 가득 차 있었고 다만 태풍으로 인해 부러졌을 것으로 보이는 나무 한 그루만 화면의 오른쪽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나무가 도드라지도록 촬영되었다고 판단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나무가 해석의 실마리이며 시작점이라 확신하기 어려웠다. ● 어쩌면 그의 작품을 읽는 방법은 화면 속 주인공과 주변의 대상물이 상징하는 바를 해석해가는 전통적 그림 읽기와는 다른 것이 아닐까 한다. 한 화면의 구도만으로도 스토리 엮기가 가능한 기존의 문법을 활용하려 했다면 피사체가 있기나 한지 의구심이 드는 촬영기법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 첫 번째 작품이 걸린 벽면을 돌아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서면 전시장 입구를 차지하는 작품과 동일한 톤의 수풀 사진들이 걸릴 예정이라 한다. 그 중에는 사진을 절반으로 가르는 철사줄도 보이고 그 철사 줄 간간이 매달린 ‘지뢰’라 쓰인 붉은 사인물도 보여서 관객은 이 사진이 DMZ 어딘가를 찍은 사진임을 서서히 알아챌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전시의 제목이 언급하는 ‘거리’는 분단이 야기한 거리라 추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나무는 아마도 분단을 상징할 수도 있겠다. 부가적인 정보를 위해 작가노트를 살펴보니 그는 그가 선택한 소재인 분단이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현실이라 전제한다. 남북의 분단이 있고, 그의 경우 코로나 집단감염 발발 이후 정부가 발표한 언택트untact 조치로 인해 아버지의 요양병원을 방문할 수 없어 야기된 아버지와의 분단이 있다. 남북의 분단이나 언택트로 인한 분단은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이어서 작가는 이 전시에서 분단의 “분위기”와 “현실로부터 분리된 현실”을 시각화 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설명은 주인공 없는 사진과 점진적으로 설명이 더해지는 사진들을 배열하는 방식을 통해 작가가 성취하려는 것이 분단의 상황이 이러저러하다는 추상적인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확고하게 한다. 그는 사진 한 장 한 장에 내러티브를 심어 넣고 읽어내도록 하지 않는다. 분위기를 파악하게 하는 무대연출 방식이 이번 전시의 방법론일 수도 있겠다. ● 또한, 그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설명한 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포함된다. 그는 “현실로부터 분리된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분단이라는 현실에서 가상의 경계를 왕래했다”라고 말한다. 그가 왕래했다는 가상계는 브라이언 마수미가 규정한 가상계와 동일한 것일까? 마수미는 그의 저서에서 ‘가상계’를 관념계와 현상계 중간쯤 위치한 지각과 정동이 작동하는 영역이라 규정한다.2) 가상계는 추상적 개념의 세계가 아니라 인간이 언어화 하기 이전에 신체에 발현되었다가 사라지는 지각적 판단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그는 분단으로 인해 알 수 없는 저 너머의 상태에 대하여 가졌던 그의 지각과 감각을 작품에서 다루는 것이 아닐까? 점점 더 명료해지는 것은 안종현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분단이라는 추상적인 관념 그 자체가 아니다. 따라서 상징 메커니즘에 따라 분단이라는 관념어를 피사체에 대입하는 재현(representation)의 문법을 벗어나는 방법론은 정당한 선택일 것이다.

안종현_시작의 불 – forest #03_피그먼트 프린트_140×185cm_2019

작가의 정동이나 감정이라는 것을 말풍선 없이도, 시각화하는 것이 가능할까? 미술사는 이것을 상징으로 해결해 왔음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말할 수 없는 것의 시각화가 여지껏 예술이 해온 기능이기도 하고, 예술이 가진 의미의 불확정성의 기원이기도 하다. 작가는 예술을 통해 정확한 메시지 전달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아예 거부하는 듯하다. 적어도 첫 작품은 상징이 아니라 예술의 불확정성에 기대고 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한다. 상징의 전달이 아니라 자신이 지각한 정동을 관객이 지각하도록 정황을 제시하는 것이 그의 의도라면 그가 회화가 아닌 사진이라는 매체를 사용한다는 것은 유리하게 작동할 것이다. 맥루언은 차가운 매체와는 달리, 뜨거운 매체는 해상도가 높다고 했다.3) 대중매체를 연구한 맥루언의 분석은 텍스트, 회화보다는 사진 혹은 비디오에 적용되는 주장이다. 사진이나 비디오는 기계의 눈으로 포착되는 탓에 대부분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엑스트라 오브제들이 화면에 끼어들어 가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는 ‘말 안해도 척이야’라는 표현대신 ‘안봐도 비디오야’라는 표현을 즐겨 쓰곤 하셨는데 자신의 추측이 해상도가 높다며 자랑하시는 품이 아마도 맥루언을 부지불식간에 체감하셨는지도 모르겠다. 텍스트나 회화에서는 저자가 자신의 메시지를 기승전결로 연출하는 과정에서 엑스트라를 축약하고 삭제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맥루언 식의 해상도를 떨어뜨리는 측면이 있다. 사진은 상대적으로 해상도가 높아 관객이 주관적으로 취할 선택지가 많다. ● 중심이 되는 피사체를 제거하는 듯이 보이는 안종현의 방법론은 신유물론적 접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작가의 관념세계를 추상적인 문자언어로 그리고 이미지라는 재현체로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무의식에 ‘좀 더 가까운’ 정동이라는 체험세계의 영역, 유물론적인 영역으로 다가간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관념보다 인간의 무의식에 가까운 정동을 소통하겠다는 의지는 실재에 ‘좀 더 가까이’ 다가 감을 의미할 것이다. 이러한 실재는 인본주의가 성취하지 못했던 새로운 도약이다. 하지만 한 개의 동전에는 언제나 양면이 존재하는 법이다. 그는 주인공이 명료한 소통 대신 실재에 ‘더 가까이 가기’위해 주인공을 죽이고 해상도 높은 정황을 제시한다. 한편, 작가의 정동을 알 수 없는 관객은 주어진 해상도 높은 정황을 발판으로 자신의 주관에 기대어 취사 선택한 실마리를 활용해 상상해야 하니 당신으로부터 (관객의) 거리는 ‘좀 더 먼’ 곳에 위치하게 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 신현진

* 각주1) 안종현, 「멀리 가까이 중간_DMZ- #01」ultrachrome archival pigment print 280×370 20202) 브라이언 마수미, 『가상계』 (갈무리: 2011), p.55.3) 심혜련, 『20세기의 매체철학-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 (그린비: 2020), p. 133.

CRITIC (p.150)

안종현 시작의 불
3.5-4.3 복합문화공간 에무
신승오ㅣ페리지갤러리 디렉터

작가 안종현의 개인전 <시작의 불>은 말 그대로 불을 소재로 한 사진작업이다. 그렇지만 직접적으로 비물질적인 불 존재 자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대상은 이미 사라져버리고 남겨진 흔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는 스펙터클한 장면으로 보이면서, 한편으로는 기록 사진의 형식으로도 나타난다. 작품에서 다뤄진 장소는 크게 두 군데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낡은 공장지대의 전소된 건물이고, 다른 하나는 산불로 인해 불타버린 숲이다. 작품에서 보이는 그대로 불에 타버린 건물은 불의 거친 운동감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숲은 타버릴 대로 타버려 소멸되고 잿더미로 뒤덮였다. 두 장소는 대조적이면서도 이어져 있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순환 구조를 가진다. 이렇게 동일한 불에 의해 나타난 서로 다른 흔적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작가는 어떠한 태도로 이것들을 담아내고자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단서는 작가가 이전의 작업에서 주제로 삼은 <통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일상적으로 되풀이되는 선형적인 것들을 관습적인 시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우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들에서 작가의 직관적 시각이 접속되는 지점들을 찾아내고 단련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태도와 연관해서 보면 <시작의 불>은 어떤 특별한 대상이 내포하고 있는 역사적, 사회적 의미와 서사에 천착하여 그럴 듯한 장면들을 반복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가 다루는 장소는 시간적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진 이후의 공간이긴 하다. 그렇지만 안종현은 원인과 결과의 인과적인 관계성으로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직관적인 시선이 멈춘, 혹은 작가의 눈에 포착된 것으로 시간적, 논리적 인과관계와는 거리가 먼 작업을 보여준다. 정리하자면 작가는 화재로 인해 벌어진 여러 가지 상황들을 조사하고 이를 통해 발생하는 서사들을 채집해서 의미를 발생시키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진이 담을 수 없는 비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감각을 포착하기 위한 상황적 혹은 장소적 특수성으로만 활용할 뿐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각적인 직관에 따른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사진 작업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더욱 심화돼 나타난다. 따라서 그가 화재로 인한 특정한 공간들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사건 그 자체의 흔적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대상과 ‘나’의 관계성이 이어지는 지점에 대한 포착이다.
이와 같은 태도로 작가가 화재 현장을 담아내는 <시작의 불> 시리즈는 어떤 것이 발생하고 난 흔적을 통해 지금 이후에 무엇으로든 변해갈 찰나의 표면이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불은 결국 작가의 말처럼 소멸과 새로운 시작 사이를 매개하는 표면적 대상으로써 나타난다. 따라서 이번 작업에서 그가 추구하는 것은 특별한 사건으로 인한 화재가 아니라 비물질적인 불의 표면적 부재를 자신만의 시각적 인식과 접속해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키는 찰나적인 표면으로 사진에 담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안종현은 외부에서 얻어지는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나’라는 주체의 시각이 포착하는 이미지의 표면에 머무르며, 그 안에서 얻어지는 것들을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는 앞으로 그가 사진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포착해 나갈지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안종현 <시작의 불 factory-#01>(사진 맨 오른쪽) 피그먼트 프린트 140x185cm 2019

[2way art]산불, 그 이후…잿더미 속에서 피어난 새로운 생명

■ 안종현 <시작의 불> 2019.03.05 ~ 04.03 갤러리 에무

“2017년 봄, 강원도 강릉에서 큰 산불이 났다. 대형화재로 발전하여 헬리콥터와 소방대원들이 출동됐음에도 불구하고 몇 주 동안이나 진압이 어려웠다”

시작의 불 – forest #01, pigment print, 100×145, 2019
여기까지는 언론보도이고 사실이다. 사건의 발단이자 종결이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안종현의 카메라는 작동한다. 그의 호기심은 “왜 현대사회에서 몇 주 동안이나 산불을 제압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하여, 사진이라는 예술장르의 역할을 대안의 가능성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시작의 불 – factory #01, pigment print, 140×185, 2019
불은 예술에서 매력적인 모티브이다. 역사의 기원은 인류와 문명의 시작을 열어준 모닥불에서부터 시작하고, 기독교와 불교 등 종교에서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이 등장한다. 그런가하면 동화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불은 가련한 소녀의 염원을 담은 알레고리가 된다. 불이 가지고 있는 꺼지지 않는 에너지와 시작적인 특징은 여러 예술에서 다루어진 바 있다. 한편 안종현 작가가 불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최근 미디어에서 지속적으로 내보내는 화재뉴스였다. 그는 2010년 이후 국내에서 대규모 화재가 매우 빈번히 발생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집 근처 수락산에도 화재 뉴스를 접한 이후에 직접 현장을 찾았고, 잿더미 속에서 포착되는 묘한 생명의 에너지는 ‘시작의 불’의 모티브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에게 불이라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시작의 불 – factory #15, pigment print, 140×185, 2019
<시작의 불>의 코드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사진과 카메라라는 매체를 접하는 태도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언론에 등장하는 산불의 이미지는 현장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 자료로써의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화재현장을 담은 사진을 통해 화재의 규모를 가늠하거나 정보를 좀 더 효율적으로 전달받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사 이후의 현장과 사건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시작의 불 – forest #01, pigment print, 100×145, 2019
그런 맥락에서 사건의 발생 이후의 현장에 주목하는 안종현 작가의 사진은 르포르타주(reportage: 프랑스어 ‘탐방’에서 비롯되었으며, 현장성을 바탕으로 보고자의 주관을 섞지 않고 서술하는 방식의 문학, 영화, 사진, 다큐멘터리)의 방법을 토대로 한다. 산불이 나고 잿더미에서 발견한 생명력은 어떤 뉴스에서도 다루지 않았던 에너지였다. 또한 사진 한 장이 현장의 주인공으로 오롯이 기능하며, 현장의 사실성과 동시에 에너지와 감성을 전달하는 매체로 되살아난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이 사진 앞에서 여러 방향의 유추와 감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르포르타주 사진의 매력이다.
HENRI CARTIER-BRESSON 1908-2004ㅣ사진출처 International photography Hall of Fame and Museum
르포르타주적인 이미지를 위한 기법적인 원칙은 단순하지만, 그의 작품에는 그 기본에 충실하려는 관점이 묻어난다. 원칙은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을 트리밍*하지 않을 것, 표준렌즈를 사용할 것, 그리고 롱테이크 기법을 활용할 것. 이 원칙은 작가가 가장 존경하는 사진작가이자 스트레이트 사진의 역사적인 인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원칙을 따른 것이다.
*트리밍ㅣ사진 촬영어 끝난 후 화면구성을 하는 것.브레송은 1930년대와 40년대 세계 제2차대전과 스페인 내전의 정황을 포착한 스트레이트 사진으로 잘 알려진 사진작가이다. 그의 사진은 셔터를 누르기 이전에 현실 상황을 숙고한 뒤 사진을 촬영하며, 결과물은 절대로 재편집하지 않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데사우 수용소에서 군중 속의 여자와 고발자의 대립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은 어떤 기교 없이 작가의 예리한 시선으로 강렬한 이미지와 역사성을 전달할 수 있는 사진의 가능성을 시사했으며,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와 촬영한 영화 <귀환 Le Retour>을 통해 전쟁포로들의 귀환을 다루기도 했다. 브레송의 첫 번째 책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프랑스어 본제목은 ‘재빠른 이미지들(Images a la sauvette)’이지만 국내에는 ‘결정적 순간’이라는 제목과 개념으로 더 알려져있다. 1940년 전쟁포로로 붙잡히지 며칠 전 라이카 카메라를 묻었다가 1943년 탈옥에 성공한 뒤 다시 찾았다는 일화는 특히 유명하며, SLR 렌즈를 사용하는 타 브랜드들의 카메라와는 달리 브레송의 스트레이트 사진 철학을 가장 기술적으로 잘 구현하는 RF 렌즈를 갖춘 라이카 카메라는 국내에서도 최근 크게 유행했었다.
“Images a la sauvette”, d’Henri Cartier-Bressonㅣ사진출처 telerama
뉴스에서 접한 산불로 시작한 작가의 호기심은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확인하는 데에서 다시 출발한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우리의 삶 속으로 한 번 더 내려와 수많은 철거와 폐허의 현장으로 연결된다. 화학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을 찾은 작가는 아수라가 되어 버린 잿더미에서 다시 한 번 반전의 이미지를 포착한다. 폐허가 되어 버린 신전의 이미지와 화재 현장을 연결한 작가의 시선은 오로지 사진의 시각언어로만 발언하고 있다. 미필적 고의성 폭력과 방치의 현장이 난무하는 가장 ‘한국이고 동시대적인’ 사회 현장의 다름 아니다.
 
시작의 불 – forest #01, pigment print, 140×185, 2019

안종현 작가의 르포르타주기법은 사실 이전 작업에 더 진하게 묻어난다. <군>(2007) 시리즈는 작가가 실제 군에 입대해서 동료 군인들과 군의 현장을 촬영한 사진들이다. 군대라는 대단히 억압적인 사회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는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동료들의 모습은 극도로 제한적인 조명의 필름 사진으로 남아 있다. (군대에서 허용된 사진 환경은 35mm 단초점 렌즈와 자연광, 니콘 수동 스트로보였다고 한다) 제대 이후 <붉은 방>(2011) 시리즈는 용산참사 이후 잿더미로 변해 버린 용산의 홍등가를 촬영한 것들이다. 강렬하고 정직한 이미지로 동시대인의 양심을 후벼파는 이 사진들은 최근 출간한 작가의 작품집 <보통 Normal>(2018)에서 볼 수 있다.사진제공ㅣ복합문화공간 에무

ㅣ안종현 개인전 <시작의 불>
ㅣ2019.03.05 ~ 04.03
ㅣ복합문화공간 에무 www.emuartspace.com

글ㅣ조숙현(전시기획자)

조숙현은 현대미술 전문 서적∙아트북 출판사인 아트북프레스(Art Book Press)를 설립했다. 연세대학교 영상 커뮤니케이션 석사를 졸업했고 영화주간지 Film 2.0과 미술월간지 퍼블릭아트에서 취재기자를 했다. 저서로는 <내 인생에 한 번, 예술가로 살아보기>(스타일북스, 2015), <서울 인디 예술 공간>(스타일북스, 2016) 등이 있으며, 2018년 강원국제비엔날레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출처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8445728&memberNo=37451778&fbclid=IwAR1rWWUpaa-4deBlGQ2kMUzBNA8BVE7Py15f_pjPLnFED2_t5mu5L7XwGPM

통로 

보이는것에서보이지않는것을찍다 

사진은 현장의 기록이고, 사실을 말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사진은 종종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엄청난 디지털 조작이 아니더라도 앵글의 각도를 약간 변형한다던지, 사진의 특정 부분을 잘라 내는 아주 간단한 방식에 의해서 사진은 아주 그럴싸하게 없던 것도 말하고, 있던 것도 다르게 이야기하며, 종종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설령 사진이 이렇게 거짓말을 한다고 하 더라도, 사진이 여전히 보이는 것을 찍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사진은 종종 작가 의눈을통해보이지않는것을찍기도한다.

안종현의 <통로> 시리즈 역시 보이는 것에서 시작했다. 조선의 왕들을 모신 종묘 인근의 신기어린 기묘한 분위기, 현란한 네온사인의 모텔, 어두운 밤 신기하게 빛을 발하는 보신각 종 그리고 마치 발굴단에 의해 발굴이라도 된 것 같은 모습으로 공사장 흙더미 안에 묻힌 공중전화 부스. 어느것하나특별하거나별날것이없는것들이었지만,종로나종묘인근골목을마주하다만나 게 되면 희한하게도 기이하고 낯설고 이상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그렇게 낯선 모습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았다.

종로. 그러고 보면 종로통은 좀 특이하다. 한국 최초의 공원이자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던 탑골 공원에는 예전의 기운은 간데없고, 하릴없는 어르신들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곳이 되었고, 학원가와 극장가, 각종 전문 상가들이 즐비한 길 뒤편에는 야릇한 네온의 모텔들이 가득하다. 밤 이 되면 유흥가들이 기지개를 키며 낮과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 펼쳐진다. 지금은 사라진 피맛길 의 작은 주점들에서 피곤한 일상을 달래던 샐러리맨들에서부터, 각종 학원을 기웃거리는 젊은이 들에서, 이미 지나간 잘 나가던 한 때를 회고 하는 노인들까지. 종로1가 광화문 사거리부터 종로 3가, 종로5가 그리고 종묘인근까지 걸어가다 보면 조금씩 달라지면서 보여주는 종로통에는 다 양한 계층과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감성이 공존하고 있다.

밤. 종로의 밤은 특히 현란하다. 해가 지고 도시의 네온이 켜지면, 종로의 뒷골목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안종현은 그 밤에 카메라를 들고 종로를 배회했다. 인공조명의 뒷배로 두고 바라보면 일상적인 것도 낯설게 다가온다.

그렇게 안종현은 우리가 보아왔던 일상적이면서도 낯선 종로를 찍었다. 언뜻 그의 사진이 종로에 대한 기록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하지만, 그의 사진은 보이는 종로의 모습에 그치지 않는다. 다 양한 시대와 감성이 공존하는 종로에서 하나의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 낯설고 이질적인 시간과 공간, 보이는 것을 통해서 느끼게 되는 보이지 않는 것에의 기록이 있다. 작가는 그것을 일종의 ‘통로’라고 말한다. 삶에서 죽음으로, 사적인 것에서 공적인 것으로, 지속되는 것으로부터 단절로 이어가는 통로(passage). 불 밝혀진 보신각 종, 하나만 켜진 공원의 인공조명, 짙은 숲 속 저편 의 한줄기 빛은 마치 관람객을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어떤 공간으로 이끌어가는 장치처럼 보인다.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여기를 너머 보이지 않는 저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동시에 지금 여기를 비 현실적인 공간으로 뒤튼다. 그래서 <통로>는 도시에 대한 기록사진이 아니다. 그것은 보이는 것 에대한것이아닌,보이는것을통해말하고자하는보이지않는것에대한기록이라할수있다.

신보슬 / 토탈미술관 큐레이터

 

Photographing the Unseen from the Seen

It is said speak the truth, recording moments as they happen. But at times, photo- graphs also lie and it doesn’t take an incredibly technical technique to make it happen. A shift of the angle here and a cut of a section there are all it takes for a photograph to convincingly reveal something that isn’t there, or portray what’s there in a different light. Photographs do, rather quite often and casually, lie to us. Regardless of their abil- ity “to lie”, it doesn’t change the fact that photographs still capture what is seen. But every so often, it also captures what is not seen, through the lens of an artist.

An, Jong-Hyun’s Passage series is one that starts with visible things. His photographs hold seemingly normal yet interestingly “abnormal” sights: The unexplainably mystify- ing aura that surrounds Jongmyo, the burial grounds of the kings from the Chosun dynasty flashy and flamboyantly bright neon signs; the Boshingak bell that seem to amazingly “shine” in the dark night; and a phone booth jutting out of the dirt pile of a construction site as if it’s an artifact being unearthed by archeologists. An was amazed at how the unexceptional streets of Jong-ro and neighboring areas of Jongmyo at times would appear to him as strange and foreign sceneries and captured these on film.

Jong-ro. If you think about it, Jong-ro is a rather unusual area. As Korea’s first park and the very place where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was recited, the energy of the time that used to fill Tapgol Gongwon is nowhere to be felt and now only the old, languid seniors visit the park to idle their time away. The main streets of Jong- ro have rows of learning academies, theaters and various industry stores while the backstreets are studded with motels with obscure signs. When darkness falls, the nightlife wakes up and Jong-ro transforms itself into a quite different place than it was during the day. In the evening, the alleys are filled with working men and women looking to find momentary escapes from their burdensome realities at drinking holes on the once and now vanished Pimat-gil. The younger generations trying out various learning academies, while the elders sit around and fondly reminisce their glory days of the past. Walking from the Gwanghwamoon intersection past Jong-ro 3-ga and Jong-ro 5-ga, towards the neighboring area of Jongmyo, one will notice the subtle differing classes of people, sentiments, and the remnants of time periods that make up the Jong-ro area.

Night. Jong-ro especially comes alive at night. When the sun sets and the neon signs are turned on, the backstreets of Jong-ro puts on another face. An walked these night streets of Jong-ro with his camera. Even the most normal of sights can come across as strange and exotic, when viewed with an artificial backlight.

That is how An captured the Jong-ro we know and didn’t know. Perhaps this is why it may seem like his photographs are pictorial records of Jong-ro. But it doesn’t end with what we are able see. The pictures embody in them a Jong-ro that is made up of differing times and sentiments, and are the recordings of the unseen that we are able to feel through what we see and the unfamiliar and disparate times and space that results when viewing Jong-ro from a different dimension. An calls this a “passage” of sorts, like the passage that leads life to death, switches the personal to the public and bridges the “Continuous to” the “End”. The lighted Boshingak bell, the single lit lighting that illuminates the park, and the sliver of light seen at the corner of a dark forest seem like a mechanism that leads the viewers into a space not of this world, making them leave the ground they are standing on and into an imaginary space while twisting their own reality into seeming like it is unrealistic. So actually, Passage is not a pictorial record of a city. It is not a record of the seen, but that of the unseen told through what we see.

 

Shin, Bo-Seul / Curator, Tot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https://blog.naver.com/samtankideco/220502307133

<BMW Photo Space에서는 2017년 11월 10일부터 2018년 1월 6일까지 2017년 네 번째 청사진 프로젝트로 안종현의 《Medium》을 선보인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물리적 단위 안에서 시작과 끝을 직면해가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연속적으로 평행하는 시간을 구분 지을 수 있는 시작과 끝의 지점은 장소와 대상을 통해 개별적으로 발생하기도 하고 때로는 공통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순간들이 반복되고 축적되었을 때 우리는 이것을 역사성이라고 부른다. 역사성은 곧 연속적으로 이어진 시간의 덩어리라기 보다 생성과 소멸이라는 양쪽의 단면을 가진 시간의 영역이 결집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영역의 단면들에서 우리는 평행하는 시간의 법칙을 벗어난 시간의 순환성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지혜를 얻기도 한다. 안종현의 «Medium»은 시작과 끝에 의해 생성ㆍ소멸되는 시간의 단면이라는 작업들을 통해 우리가 지금껏 인지하지 못했던 시간의 또 다른 가능성을 드러낸다.

용산의 홍등가를 촬영한 <붉은 방>(2011)은 도시의 생성을 위해 소멸을 앞둔 재개발 구역을 촬영한 작업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고 외면받았지만 철거를 앞두었을 때 비로써 사회의 관심을 받게 된 이 장소는 자본의 가치를 벗어나는 일들이 일어나자 또다시 무관심에 의해 폐허로 방치된 곳이기도 하다. 소멸의 순간 또 다시 사회에서 외면받게 된 이 현상을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익명의 물건들을 통해 은유한다. 강원도의 중석광산을 촬영한 <미래의 땅>(2013) 또한 자본의 가치가 다해 유용성이 소멸된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1970년대 한국의 산업화와 부를 축적하며 수만 명의 사람들을 심산유곡으로 불러 모았던 이 땅은 실용에 의해서만 운용되는 사회의 원칙을 따라 지금은 버려진 땅이 되었다. 하지만 안종현은 폐허가 되어 적막해진 도시가 아닌 과거의 영광을 품은 채 퇴적된 유적처럼 이 장소를 접근하고 있다.

먼저 대상의 존재와 인과를 인지하고 작업했던 앞의 두 시리즈와 달리 <통로>(2015)는 아버지의 병환으로 인한 간호 중에 우연히 발견하게 된 한밤중 종로의 모습을 담아낸 작업이다. 아직은 존재하지만 시대의 기능이 다해 곧 소멸할 듯한 노쇠한 종로는 중첩된 시대의 흔적들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안종현은 사람들이 떠나간 밤의 시간 현재의 장소성과 시간이 모호해진 듯한 이질적인 대상들을 찾아 기록한다. 그렇게 기록된 장면들은 소멸의 가능성이나 흔적이라기 보다 마치 새로운 차원의 시간, 장소로 이동할 것만 같은 판타지를 현재의 장소를 통해 재현해낸다. 이것은 시간의 단면이 ‘시작과 끝’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제도 사회가 구축해 놓은 시스템에서 분명한 목적 외 또 다른 기호를 우리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붉은 방>이 제도권 사회가 만들어낸 시스템에 대한 회의적인 관점이 담겨 있었다면, <미래의 땅>에서는 사회의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소멸이라는 시간의 끝에 남겨진 흔적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고민은 <통로>에서 정해진 사회의 코드를 이탈하는 행위로 이어지며 이를 통해 우리가 제도권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시간의 구역에 포획되어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신작 <풍경>(2016-2017)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마주하게 된 순수한 시간성을 담아낸 작업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또는 이전부터 존재했던 자연은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무한한 대상으로 시작과 끝의 지점을 가늠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생성에 의한 소멸이 아닌, 소멸에 의한 생성과 끝에 의한 시작을 증명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안종현은 이러한 대상을 통해 우리의 시간이 제도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영역이 아닌 개인의 실존적인 영역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김솔/큐레이터

 

The fourth ‘Chung(靑) Project’ of 2017, BMW Photo Space presents 《Medium》 of JongHyun An, from November 10th, 2017 to January 6th, 2018.

 

We are facing the beginning and ending through the time, the physical measure. The starting and ending points at which successive parallel times can be distinguished may occur separately and sometimes in common through place and object. When these moments are repeated and accumulated, we call it historicity. Historicity can be said to be a collection of time domains with both cross-sections of creation and extinction, rather than a mass of successive time. Among these cross-sections, we find the cycle of time outside the parallel law of time, and we obtain wisdom through it.《Medium》 of JongHyun An, reveals another possibility of time that we have not been able to perceive through works such as the cross-section of time that is created and destroyed by beginning and ending.

 

<Red Room>(2011) which was taken in red district of Yongsan, is about redevelopment area, which is about to distroy for creation. The place was made by capitalism society and also disregarded by it too. The society focused on this place again right before the demolition, but the attention was gone because the events that happening around it couldn’t fit in to the value of capital. After that, the place is leaved like a ruin, without any attention. The anonymous subjects in the works are metaphors of the phenomenon that shows disregard at the moment of extinction. <Future Land>(2013), which was taken at tungsten mine in Gangwon-do, shows the extinction of usefulness through running out of the value of capital. In 1970s, Korean industrialization period, this land attracted millions of people who want fortune. Now, according to the rules of world that follows practicality, this land is dumped, but JongHyun An approaches to this place in different way. He thinks that it’s not the ruin, but the historic site which has glorious history.

 

Unlike two previous series that recognize in the existence and causality of subjects, <Passage>(2015) is about the coincident discovery of Jongro in midnight. He was caring his sick father in those days. Being existed yet, but Jongro looks like an old place that seems to disappear soon after the function of the age is gone. Also, it is a place where the sign of the overlapped periods are mixed. In the night, when all people has leaved, JongHyun An records disparate subjects which has blurred characteristics of space and time. Those recorded scenes reproduce the fantasy that takes us to other dimensional space-time through present space, rather than being possibility or trace of extinction. This means that the time has not only 2 sides of ‘start and end’, but also other faces like layer. Furthermore, we can confirm that there’s another symbol in the system of institutional society.

 

If the <Red Room>(2011) shows skeptical view to the system of institutional society, the <Future Land>(2013) goes forward to the agony about the trace of disappearance made by the system of institutional society. This agony, is advanced to the breakaway from the social codes in <Passage>(2015). Through this, we can notice that we were captured in the district of time which was made by institutional society. JongHyun An’s brand new work <Scenery>(2016-2017) is about the purity of the time through all this process. The nature that existed along with the history of mankind is an infinite object which is constantly repeating the creation and extinction, and it is also the existence which is not able to measure the point of the beginning and the end. And it is the object that proves the creation by the extinction and the beginning by the end, not the extinction by the creation. JongHyun An tells us that our time should go back to existential field of each person, not the artificial territory made by the system.

안종현 <과거, 현재, 미래>

글/ 고윤정

안종현 작가의 작업은 시간과 공간의 결이 어떤 사건이나 풍경을 마주하였을 때의 일반적인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마치 동양화의 다시점 작업을 보는 것처럼 원경, 근경의 내용이 한 장면에 압축되어 담겨져 있다.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림으로 들어가도록’ 한다. 거대한 작품의 상황 속에 관람자는 쑥 빠져들어 그때의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가 거닐게 된다.

어떤 상황 속을 상상하거나 음미하며 ‘걷는다’는 것은 비자발적인 기억의 정신적인 경험들이 드러난다는 것이고, 개인적인 기억과 집단적인 역사 사이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 그 시간이 갖고 있는 상황을 비평적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현재가 처해 있는 구조적 오류를 탐색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안종현이 찾아간 광산, 집장촌, 종로구, 아버님의 출사지, 불탄 공장들은 안종현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사회적인 시스템이 동시에 작동하는 장소였다.

안종현 작가의 작업은 과거, 현재, 미래의 과정을 찍고 있는 피사체에 투영시켜 한 자리에서 역사적인 흐름을 보여준다. 군대에서 사진 찍는 일을 했다고도 하는 작가는 훈련하는 군인들, 군대의 밤풍경이나 철조망 등 군대에서 흔하게 보이는 풍경들도 두터운 무언가가 눈앞을 살짝 막은 것처럼 찍어, 현재이지만, 현재이지 않은 것 같은, 그러면서 과거의 무언가와 앞으로의 무언가가 잔뜩 한 군데에 응축되어 있는 것처럼 표현했다. 용산의 버려진 집장촌을 찍은 <붉은 방>(2011)은 재개발 때문에 버려지고, 쓸모없음 때문에 또 버려진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면면을 보여준다. 사진에서 드러나는 붉은 색 형태와 공간이 갖고 있는 미묘함은 참혹함과 동시에 다양한 사연들을 연상시킨다.

<통로> 작업을 하면서 작가는 전환기를 맞는다. 이전의 작업들은 한 사회의 비극적인 단면을 찾아다니며 찍었던 것이라면, <통로>는 공교롭게도 그 비극적 단면이 작가 스스로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시면서 병간호에 매진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작가는 매일같이 종로 거리를 걸으며 종로의 밤과 낮, 새벽을 다양하게 경험하기 시작한다. 같은 장소를 매일 걸으니 네온사인, 모텔간판, 자판기, 쓰러진 천막, 공사 중인 도로, 가림막에 가려진 동상의 뒷켠, 등등의 도시적 사물들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되면서도 여전히 활기가 있는 복합적인 모습의 파편들이 작가의 시선에 점점 담기기 시작한다. <통로>를 계기로 종로의 보이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는 아버지의 흔적들을 끄집어 내어 작업으로 이어간다. 그렇게 <풍경>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어찌 보면 숱한 재개발 사진이나, 숱한 도시 사진만큼 아마추어 사진가부터 거장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다루어져 온 주제는 풍경 작업일 것이다. 작가는 흔하디 흔한 풍경을 다시 바라보며서, 그 안에 총체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시간성, 역사성, 공간성을 응집시켜 판타지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과거보다 점차 추상적으로 귀결되는 사물들의 파편은 과거 폐허에서처럼 절망적으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꿈’을 담은 듯한 형상을 보인다.

<시작의 불> 시리즈는 제목에서 오는 아이러니를 통해 자연적인 진화의 민낯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두컴컴한 숯같은 나무 사이로 멸종과 잠재력이 동시에 함축되어 있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없어진다는 것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부패와 소멸 속에서 새로운 것들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역사는 진보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하면서 흐르기 마련인데, 안종현의 사진에는 그 흐름이 보이고 있는 중간적인 시점에서 멈춰 현장성을 배가시킨다.

안종현은 이 중간적인 시점을 ‘보통’이라고 표현한다. 시간적으로는 ‘현재’이지만, 사회적 기준으로는 ‘보통’인 것이다. 보통의 기준은 누군가가 생각하고 바라보는 고정된 시선 속에서 정해지기 마련인데, 보통의 기준이 넘어서는 순간, 혹은 보통이 무너지는 찰나, 혹은 지극히 평범하게 여겨지는 ‘보통’의 풍경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생성된다.

안종현은 자연적 유토피아와 현실적 유토피아를 오가며 누구나가 생각하는 기준이 무너졌을 때의 이면을 논하여 왔다. 오히려 같은 공간을 매일 다니면서 다른 것을 발견해 왔듯이 우리의 삶, 우리의 시간과 공간에는 작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보이지 않는 사건들이 현실에 침투하면서 현장은 어제는 유토피아였다가도 오늘은 폐허가 되면서 역사적인 진화를 진행한다. 그 과정은 자연이나 기계적 삶이나 같은 과정을 보여주는데, 그 과정에서 무너지고 새롭게 생성되는 다양한 ‘보통적 기준’을 작가의 시선으로 꾸준히 발견하기를 기대한다.

 

canon interview

https://www.canon-ci.co.kr/magazine/detail/4928?listMainCate=PEOPLE&listSubCate=&area2List=null&photoVstAreaSeq=null&seqArr=CUR

누군가의 안과 밖 ‘통로’를 보다

2011년 ‘미래작가상’, 2013년 ‘사진비평상’, 2014년 ‘스코프 올해의 작가상 최종 후보’ 등 사진가 안종현의 이력은 언뜻 보기에도 화려하다. 물론 공모전 수상 여부가 작품의 좋고 나쁨을 가리는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다. 하지만 한 작가가 동시대 예술계의 중심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소소한 장치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 면에서 ‘사진가 안종현은 이미 잘 다져진 주춧돌 위에 서 있는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젊은 작가의 포트폴리오를 들춰 보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사진가 안종현의 지난 시간이 담긴 포트폴리오를 받아 든 순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군복무 일상을 포착한 <군>, 버려진 물건과 나눈 긴밀한 대화인 <정물>, 버려진 탄광 마을에 흐르는 공허한 상실감을 담은 <미래의 땅> 등의 연작에는 작가가 보낸 고민의 시간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작품을 촘촘히 쌓아가고 있지만 작가는 스스로 먼 길을 돌아 오늘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저 사진이 좋아서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고,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포착한 결정적 순간을 경험해 보겠다며 수많은 롤의 필름을 소비해왔다” 올해 초 작가의 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당시 병간호를 하며 인적이 드문 새벽 시간대에 종묘 지역을 거닐면서 주변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사진가로서의 길을 걷게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던 시절, 주요 촬영지로 삼았던 지역을 다시 찾게 된 것은 아버지의 고통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인간으로서 겪었던 고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다행히도 사진가 안종현은 어둠 속에 놓인 사물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하며 깊은 위로를 받을수 있었다. <통로>는 그간 작가가 보내온 겹겹의 시간 덕분에 얻게 된 작은 선물과도 같은 작업이다.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에 관한 독특한 실험

<통로> 시리즈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하나같이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마치 <이상한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앨리스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면 토끼굴이 아닌 안종현이 포착한 시멘트 바닥 혹은, 도심 속 우거진 수풀을 연결 고리 삼아 제 3의 세계로 이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이 들 만큼….
“삶과 죽음의 시간, 신성한 것과 범속한 것, 지속과 단절, 진짜와 가짜, 생성과 소멸,무한과 영(zero) 등에 대해 우리의 익숙한 관념은 이분법으로 작용하지만 실제로는 본질을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오히려 익숙한 이분법적 관념에서 벗어날 때 사진을 통해 새로운 통로를 경험할 수 있었다.”는 작가의 고백은 그의 사진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작은 단서를 제공한다. 바꿔 말하면, 안종현은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을 가능케 하는 ‘문’,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공간과 오브제들을 포착하고자 했다. 그의 작품에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은 스트레이트 사진이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는 현대 사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듯 당당한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독특한 실험은 이제 막 본격화되었다. 작가가 일상에서 발견한 통로와 다른 누군가가 찾은 그것은 절대 동일할 수 없다. 단지, 그 기묘한 지점과 초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형태로 가시화된 결과물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무를 나무처럼 보이지 않게 찍고 싶었다.”고 말하는 사진가 안종현. 그가 찾고 있는 <통로>의 종착역은 어느 지점일까. 사진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 덕분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그의 사진이 머리에서 쉽사리 떠나지 않는다.

http://www.monthlyphoto.com/art/art/artView.do?artId=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