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의 고고학자, 안종현: 거리와 잔향의 사진술
안종현의 사진은 침묵의 증언이다. 그의 렌즈는 사건의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있는 고요한 폐허, 버려진 공간, 그리고 상처 입은 풍경을 향한다. 그는 포토저널리스트처럼 사건의 중심을 향해 돌진하는 대신, 모든 것이 끝난 후에 도착하는 고고학자나 법의학자의 태도를 취한다. 그가 발굴하는 것은 물리적 유물이 아니라, 한국의 특정 장소와 공간에 겹겹이 쌓여 있는 보이지 않는 기억, 트라우마, 그리고 정동(affect)의 지층이다. 안종현은 객관적 기록이라는 르포르타주 사진의 엄격한 문법을 빌려와, 가장 주관적이고 증명할 수 없는 것, 즉 한 장소에 깃든 심리적 대기와 감각적 잔향을 증명해내는 독창적인 사진 세계를 구축했다.
트라우마의 지형학: 사건 이후의 풍경
안종현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첫 번째 축은 역사적, 사회적 트라우마가 새겨진 장소를 파고드는 고고학적 실천이다. 그의 초기 대표작인 <붉은 방 (Red Room)> (2011)은 이러한 방법론의 선언과도 같다. 도시 재개발의 논리 속에서 잊힌 용산의 집창촌, 그 텅 빈 방들을 기록한 이 사진들 속에는 이미 떠나고 없는 여성들의 삶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찢어진 벽지, 흩어진 하이힐, 얼룩진 매트리스는 단순한 잔해가 아니라, 그곳에 존재했던 이들의 고통과 욕망을 머금은 유물(relic)이 된다. 작가는 이 사물들을 통해 거대 담론 뒤에 가려진 개인의 서사를 발굴하며,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고발한다.
이러한 고고학적 탐사는 <멀리 가까이 중간 (Far, near, middle)> (2020)에 이르러 국가적 심리-지리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한국전쟁과 냉전의 유산이 응축된 용산 미군기지, 기지촌, 미군이 세운 정신병원, 그리고 DMZ의 미확인 지뢰 지대 등은 모두 ‘사건 이후’의 공간이다. 작가는 이 폐허를 마주한 자신의 “몸의 반응”이 “삭제된 역사를 다시 호출하는 통로”가 된다고 말한다. 특히 이 작업에서 주목할 점은 DMZ라는 국가적 분단의 상처를 아버지와의 심리적 거리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중첩시키는 대담함이다. 이를 통해 안종현은 정치적인 것이 어떻게 개인적인 것이 되며, 개인의 상처가 어떻게 역사의 상흔과 공명하는지를 증명한다.
철학적 전환: 경계의 공간과 순환의 원리
안종현의 작업 세계가 지닌 깊이는 사회 비판적 시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그의 예술적 여정에는 외부를 향하던 시선이 내부로, 그리고 보편적 질문으로 향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존재한다. 그 중심에 있는 작업이 바로 <통로 (Passage)> (2015)이다. 아버지의 병환이라는 개인적 위기 속에서 매일 걷던 종묘와 종로의 일상적 풍경은 작가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삶과 죽음, 신성함과 세속적인 것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통로’를 발견하고자 했다. 비평가 고윤정이 지적했듯, 이 작업을 계기로 그의 시선은 “작가 스스로에게 집중”되며, 그의 예술은 한 단계 더 깊어진다.
이러한 내적 성찰은 파괴와 생성이라는 거대한 순환의 원리를 탐구하는 <시작의 불 (Fire of Beginning)> (2019)로 이어진다. 대형 산불 기사에서 영감을 받은 이 프로젝트는 불에 탄 숲과 파괴된 공장의 잔해를 병치시킨다. 여기서 불은 단순한 파괴의 힘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재생의 에너지로 재해석된다. 자연과 문명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원소로 되돌리는 불의 힘 앞에서, 작가는 소멸이 곧 새로운 탄생의 전제 조건임을 명상한다. <통로>를 통해 내면을 응시하는 법을 배운 작가는, <시작의 불>을 통해 개인의 실존적 문제를 우주적 순환의 원리 속에서 조망하는 보편적 시선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정동적 르포르타주: 거리와 감각의 변증법
안종현의 사진이 동시대 사진 미학에 기여하는 가장 독창적인 지점은 그의 방법론 자체에 있다. 그는 존경하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원칙처럼 사진을 트리밍하지 않고 표준 렌즈를 사용하는 등 르포르타주의 객관적 태도를 견지한다. 그의 사진은 조작되지 않은 현실의 증거물이라는 강한 권위를 지닌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가 궁극적으로 기록하고 증명하려는 것은 사실 자체가 아니라, 사실이 남긴 비물질적 흔적, 즉 ‘정동’이다.
비평가 신현진이 분석했듯, 안종현은 의도적으로 사진에서 명확한 주인공이나 서사적 중심점을 제거한다. DMZ를 찍은 그의 사진에는 병사나 철책선 대신 무성한 녹음만이 가득하다. 관객은 여기서 분단이라는 명확한 서사를 읽어내는 대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막연한 불안감과 긴장감 같은 정동을 신체적으로 먼저 지각하게 된다. 높은 해상도를 지닌 사진이라는 ‘뜨거운 매체’는 풍부한 시각적 디테일을 제공하지만, 해석의 길잡이를 제거함으로써 관객을 능동적인 해석의 주체로 만든다.
이처럼 객관적 기록의 형식과 주관적 감각의 목표가 결합된 그의 방법론은 ‘정동적 르포르타주(affective reportage)’라 명명할 수 있다.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증거적 힘을 사용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장소의 심리적 분위기를 기록한다. 그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거리’라는 개념은 이러한 방법론의 핵심이다. DMZ의 물리적 거리, 아버지와의 심리적 거리, 사건 이후라는 시간적 거리, 그리고 명확한 피사체를 제거함으로써 만들어내는 비평적 거리에 이르기까지, 안종현은 거리의 사진가이다. 그는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들 ‘사이’의 공간, 과거와 현재 ‘사이’의 시간, 그리고 보는 자와 보여지는 것 ‘사이’의 감각적 긴장을 포착한다.

결론적으로 안종현은 동시대 한국 사회의 상처와 기억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각 언어로 번역해내는 작가다. 그는 폐허 속에서 역사의 잔향을 듣고, 텅 빈 공간에서 존재의 무게를 감각하며, 파괴의 흔적에서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읽어낸다. 그의 사진은 우리에게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풍경의 표면 아래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시간과 감정의 흐름을 ‘느끼도록’ 요구한다. 그는 정동의 고고학자로서,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보이지 않는 심리적 지도를 그려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