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순수’한 풍경:
안종현의 초현실적인 우주
고동연 (미술비평)
국내 사진계에서 안종현의 약진은 주목할만하다.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는 논쟁이 어언 100여 년을 넘었기에 고루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이 논쟁은 아직도 유효하다. 19세기 사진이 처음 발명되었을 당시에는 사진이 변형할 수 없었기에, 디지털 시대에는 사진이 너무 변형이 쉬워졌기에, 이래저래 사진이라는 매체는 보수적인 비평가들에게 의심과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는 오히려 사진에서 진실성에 대한 기대감을 더 철저하게 포기하게 했다. 그리고 잃는 것이 있다면 얻은 것은 오랫동안 외부 대상 세계를 보면서 인간이 일상적으로 해왔던 자신만의 상상력을 대상에 투영하는 것이다. 마치 사실인 것처럼…. 안종현의 초현실적인 사진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물론 안종현의 초현실주의적인 사진이 단지 최첨단 디지털 기술의 산물에 기대는 것은 아니다. 2011년 <붉은 방> 시리즈, 2015년 <통로>는 모두 오래되고 버려진 공간을 다룬다. 붉은 방은 거의 국내 모든 사진작가가 통과 제례처럼 거치는 종로의 뒷골목 홍등가를, <통로>는 인접한 종로의 아버지 병문안을 가는 길에 보았던 뒷골목을 찍는다. ‘통로’는 여기서 중의적이다. 서로 다른 시간대의 문화와 계층이 섞이고 서로 연결되는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통로’이기도 하고 그의 사진에서 보자면, 다른 초현실적 세계로 향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과장된 소실점, 무엇보다도 그의 눈을 끌었던 붉은 색, 표면의 질감에 과도하게 집중함으로써 안종현의 사진은 이곳의 세계이지만 저곳에 속한 세계인 듯한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안종현의 사진은 기본적으로 다루는 장소와 방식을 통하여 이탈 현실적인 인상을 빚어낸다. <시작의 불>(2019)과 <멀리 가까이 중간>(2020)은 이러한 측면에서 중요하다. 과도하리만큼 대상에 밀착해서 찍기 시작하면서 물리적인 공간감마저 사라진다. ‘멀리 가까이 중간’은 물리적인 거리감이 자연스럽게 대상에 대한 우리의 객관적인 시야를 소멸시키고 그야말로 우리의 시선이 대상의 표면 위로 유영하게 만든다. 전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으면 없을수록 보는 이의 시선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이 자유로워진다.
작가는 사진을 찍기 위한, 그리고 찍은 후에 파생되는 모든 과정에서 사진 이 변화를 거듭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관객에게 가장 큰 영 향을 주는 것은 결국 대상과의 거리감일 것이다. 잘 알고 있다고 여기던 대 상도 멀리서, 가까이에서, 중간에서 보면 다 달리 보인다. 게다가 정중앙의 구도도 범상치 않다. 적정거리를 무시해버린 안종현의 사진은 결국 다른 방식으로 읽히기를 요구한다. 전체의 형태를 통하여, 그리고 맥락을 통하여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표면을, 대상의 특정 실루엣을 우리는 느낄 수밖에 없게 된다. 안종현의 사진은 그렇게 풍경을 낯설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