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works of Jong hyun, An

안종현의 사진에서 ‘사건 이후’, 잔여, 경계 그리고 심증의 구조

Far Near Mid – Installation View

안종현의 사진을 2000년대 초반의 초기작부터 최근 작업까지 이어서 바라보면, 지하철의 승객, 동물원의 동물, 군인, 재개발로 버려진 집창촌, 폐광, 단종의 유배지, 종묘의 밤, 산불이 지나간 숲, 묘지의 플라스틱 꽃, 미군기지와 DMZ, 폐쇄된 정신병원처럼 서로 상당히 다른 대상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작업들은 하나의 장르로 묶이기 어렵다. 스트리트 포토그래피에서 출발해 다큐멘터리, 풍경, 연출사진, 퍼포먼스적 사진에 이르기까지 형식도 계속 변해왔다. 그러나 20여 년의 작업을 하나의 궤적으로 놓고 보면 그 변화 안에서 오히려 매우 일관된 질문이 발견된다. 안종현은 눈앞에 존재하는 것을 촬영하지만, 실제로 관심을 갖는 것은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것에 접근하기 위해 그가 반복적으로 선택해온 장소는 언제나 무언가가 이미 지나가 버린 자리다. 그의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의 순간이 아니라 사건 이후의 시간이다. 사건은 끝났지만 그 결과는 끝나지 않았고, 사람은 떠났지만 흔적은 남아 있으며, 기능은 사라졌지만 물질은 계속해서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안종현의 사진은 폐허의 미학을 넘어 잔여의 미학으로 이동한다.

Red Room_red chair

《Red Room》에 도착했을 때 여성들은 이미 떠나 있었다. 《Future Land》의 광산은 폐쇄되었고 산업도시는 기능을 잃었다. 《The Beginning of Fire》의 숲에서는 불길이 사라졌지만 검게 탄 나무와 재가 남아 있었다. 《Plastic Flowers》에서는 애도를 위해 놓였던 조화가 변색되고 부서지며 폐기되어갔다. 《Far, Near, Middle》의 DMZ에서 전쟁은 오래전에 멈췄지만 땅속에는 지뢰가 남아 있었고, 《National Psychiatric Hospital》의 병동에서도 환자와 의료진은 사라졌지만 침대와 커튼, 벽과 의료기구가 남아 있었다. 안종현에게 잔여는 과거의 쓰레기가 아니다. 그것은 사라진 사건이 현재 속에서 계속 작동하는 방식이며, 과거와 현재가 서로 맞닿는 물질적 표면이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서 부재는 공백이 아니다. 오히려 부재는 존재를 다시 발생시킨다. 《Red Room》의 작은 신발이나 화려한 벽지, 거울과 침대는 한 여성의 삶을 설명하지 못하지만, 그곳에 누군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강하게 환기한다. 사람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사람의 존재가 더 강해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멀리 가까이 중간_국립 정신 병원

이러한 역설은 안종현의 사진을 단순한 기록사진과 구분하게 한다. 사진은 흔히 증거의 매체로 이해된다. 카메라 앞에 실제 대상이 존재했기 때문에 사진이 만들어졌다는 지표성은 사진에 특별한 증거 능력을 부여해왔다. 그러나 안종현의 사진이 제공하는 증거는 완전하지 않다. 《Red Room》의 신발은 사건을 설명하지 않고, 《Future Land》의 폐공장은 산업화의 전체 역사를 증명하지 않으며, DMZ의 풀밭 사진에서는 지뢰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National Psychiatric Hospital》의 병상도 그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직접 말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진을 바라보면서 무엇인가 있었다고 확신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안종현의 사진은 물증보다 심증에 가까워진다. 심증은 명확하게 보이는 하나의 증거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흔적과 정황이 모이며 내부에서 형성되는 확신이다. 그의 사진은 관객에게 완전한 진실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흔적을 남겨두고, 관객이 그 흔적 사이를 연결하면서 보이지 않는 사건을 스스로 구성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그의 사진에서 의미는 이미지 내부에 완성되어 있지 않다. 의미는 사진과 관객 사이에서 발생한다. 이 때문에 안종현의 작업은 증거의 미학이라기보다 확신이 생성되는 조건에 관한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지하철
동물원

하지만 ‘사건 이후’라는 문제보다 더 오래전부터 그의 작업에 존재했던 것은 경계의 문제다. 《Subway》에서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매우 가까이 있지만 심리적으로 서로에게 분리되어 있다. 《Zoo》에서는 유리와 철창이 인간과 동물을 분리하고, 자연을 모방한 플라스틱 나무와 인공 구조물 속에서 살아 있는 동물이 움직인다. 자연과 인공, 인간과 동물, 관찰자와 관찰대상이라는 구분은 분명해 보이지만 사진을 오래 바라볼수록 흔들린다. 이후에도 이 문제는 반복된다. 군인과 민간인, 미군기지 안과 밖, DMZ 안과 밖, 정상과 비정상, 생명과 비생명, 자연과 인공, 과거와 현재가 계속해서 그의 작업 안에서 서로 마주한다. 안종현은 경계의 한쪽을 선택하기보다 경계가 작동하는 장소에 카메라를 놓는다. 그런 의미에서 《Far, Near, Middle》이라는 제목은 하나의 작품명을 넘어 그의 작업 전체를 설명하는 미학적 문장처럼 읽힌다. 멀리 있는 것과 가까이 있는 것 사이, 그 중간에서 사진은 발생한다.

Army_Mine laying
멀리 가까이 중간_DMZ

《Army》는 이러한 구조의 중요한 원점이다. 안종현은 군대에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했다. 그가 촬영한 것은 전쟁이 아니라 훈련과 기다림, 휴식과 경계근무, 전우들의 얼굴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여기서 분단은 거대한 정치적 개념으로 나타나지 않고 일상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이후 그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태도가 된다. 그는 역사적 사건을 직접 재현하기보다, 역사가 개인의 몸과 장소에 어떤 형태로 남는지를 바라본다. 동시에 《Army》에서 사진가는 특이한 위치에 있다. 그는 외부에서 군대를 바라보는 관찰자가 아니라 그 구조 내부에 있는 군인이다. 내부자이면서 동시에 카메라를 통해 거리를 만드는 사람인 것이다. 이 이중적 위치는 이후 DMZ 작업에서 다시 중요해진다. 접경지역을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때 그곳의 군사적 구조 안에서 생활했던 사람이 사진가가 되어 다시 돌아간다는 점에서 안종현에게 DMZ는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자신의 개인사와 한국 현대사가 교차하는 장소가 된다.

FUTURE LAND_Tungsten Mine
소년 단종

《Future Land》에서는 그의 시간관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가 촬영한 것은 폐광이고 산업화가 지나간 뒤 남은 구조물이다. 그러나 제목은 과거의 땅이 아니라 미래의 땅이다. 이 역설이 안종현의 시간 감각을 잘 보여준다. 폐허는 일반적으로 과거의 흔적으로 읽히지만, 그는 그곳에서 현재 문명이 도달하게 될 미래를 본다. 인간의 욕망이 자원을 발견하고, 사람들이 모여들고, 도시가 만들어지고, 산업구조가 바뀌고, 결국 사람들이 떠난 뒤 거대한 구조물만 남는 과정은 과거에 일어난 일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도시들이 언젠가 맞이할 미래처럼 보인다. 이때 사진의 시간은 직선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과거를 촬영한 사진이 미래를 보여준다. 《Boy, Danjong》에서도 시간은 단순히 지나간 것이 아니다. 570여 년 전 죽은 소년 왕과 현재 영월의 소년이 하나의 이미지 안에서 겹쳐지고, 곤룡포를 입은 소년과 평상복을 입은 소년, 하얀 풍선과 수면의 반사, 현재의 관광객이 하나의 화면 안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충돌시킨다. 안종현에게 역사는 과거에 완결된 사건이 아니라 장소와 몸을 통해 반복해서 현재로 돌아오는 것이다.

LANDSCAPE_MEDIUM
passage_carpet

《Passage》와 《Landscape》는 그의 작업이 사회적 역사에서 존재 자체의 문제로 이동하는 중요한 변곡점이다. 《Passage》에서 종묘와 종로는 단순한 역사적 장소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가 순간적으로 만나는 전이공간이 된다. 안과 밖, 삶과 죽음, 현재와 과거, 빛과 어둠이 하나의 장소에서 중첩된다. 《Landscape》에서는 이러한 관심이 더 근본적인 차원으로 이동한다. 죽은 나무가 살아 있는 존재처럼 보이고, 무기물이 생명체처럼 느껴지며, 바라보는 주체와 바라보이는 객체의 관계마저 흔들린다. 초기 《Zoo》에서 시작된 생명과 비생명, 자연과 인공의 문제는 여기에서 존재론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세계는 인간이 붙인 이름과 분류만으로 완전히 포착되지 않는다. 사진은 오히려 그 분류가 흔들리는 순간을 보여준다.

시작의 불_불에 탄 땅
PLASTIC FLOWERS_2021
UNCHANGING_2022

《The Beginning of Fire》에서는 잔여가 더 이상 과거의 흔적에만 머물지 않는다. 불탄 숲에는 죽은 나무가 있지만 그 사이에서 새로운 식물이 자란다. 파괴와 생성은 서로 반대되는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장소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여기에서 안종현은 잔여를 새로운 생명의 조건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Red Room》에서 잔여가 기억의 흔적이었다면, 《Future Land》에서는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구조였고, 《The Beginning of Fire》에서는 다시 생성이 시작되는 기반이 된다. 이 변화는 그의 작업이 점차 역사적 기억에서 생태적 시간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Plastic Flowers》 역시 이 흐름에서 중요하다. 플라스틱 꽃은 시들지 않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시간 속에서 변색되고 부서진다. 기억을 지속시키기 위해 선택된 인공물이 자연물처럼 늙어가는 순간, 자연과 인공의 경계는 다시 무너진다. 동시에 사진과 플라스틱 꽃 사이에는 묘한 유사성이 생긴다. 둘 모두 사라지는 것을 붙잡아두려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둘 다 시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Unchanging》은 이 문제를 더 일반적인 차원으로 확장한다.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신화적 형상과 인공물의 표면에도 균열과 얼룩이 쌓인다. 그의 세계에서 영원한 것은 거의 없다. 도시도, 산업도, 기억도, 플라스틱도, 자연도 계속해서 변화한다. 그러나 바로 그 변화 때문에 흔적이 만들어진다.

Far Near Mid – 미확인 지뢰 지대- #02, pigment print, 150x320cm, 2020

《Far, Near, Middle》에 이르면 이 여러 문제들이 다시 한국전쟁과 냉전의 역사 속에서 하나로 모인다. 용산 미군기지, 기지촌, 정신병원, DMZ와 미확인 지뢰지대는 서로 다른 장소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역사적 구조에서 파생된 공간이다. 그러나 안종현은 전쟁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특히 미확인 지뢰지역의 사진에서 이러한 방식은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사진에는 풀과 나무, 평온한 풍경만 보인다. 지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풍경은 더 불안해진다. 여기서 사진의 핵심은 대상의 가시성이 아니라 이미지와 지식 사이에서 발생하는 인식의 변화다. 평범한 들판이라는 눈앞의 물증과 그 아래 지뢰가 있다는 정보 사이에서 관객의 심증이 발생한다. 보이는 것과 존재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의 사진을 긴장시키는 것이다.

국립 정신 병원

《National Psychiatric Hospital》에서 이 문제는 다시 한 번 중요한 방향으로 전환된다. 초기의 컬러사진들은 사람이 떠난 병원의 표면을 기록한다. 침대, 커튼, 의료기기, 벽과 개인의 물건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어지는 흑백사진에서는 사람들이 다시 공간으로 들어오고 눈을 감는다. 그들은 벽을 만지고 바닥을 더듬으며 지팡이로 공간의 경계를 확인한다. 사진은 본질적으로 시각의 매체인데 사진 속 인물은 시각을 포기한다. 이 역설은 안종현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는 여기에서 20년 넘게 자신의 작업을 지탱해온 ‘보기’라는 행위 자체의 한계를 질문하기 시작한다. 과거는 정말 볼 수 있는가. 기억은 이미지로 완전히 포착될 수 있는가. 사진은 얼마나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시각은 충분하지 않으며 몸이 등장한다. 손과 발, 피부, 청각과 촉각이 장소와 접촉한다. 사진가의 위치는 관찰자에서 접촉자로 이동한다. 초기 《Subway》에서 사람 사이의 거리, 《Zoo》의 유리, 《Red Room》의 부재한 사람과 남은 사물 사이의 거리, 《Far, Near, Middle》의 보이는 풍경과 보이지 않는 지뢰 사이의 거리가 있었다면, 이제 《National Psychiatric Hospital》에서는 몸이 그 거리를 직접 건너려 한다.

LANDSCAPE_Red Berries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면 안종현의 사진은 결국 거리의 미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까이 있지만 닿지 않는 것, 멀리 있지만 사라지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려는 카메라. 그의 작업은 세계와 인간 사이의 거리를 없애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드러낸다. 이 때문에 그의 사진에는 늘 약간의 미완성이 남는다. 사건은 완전히 설명되지 않고, 타인의 삶은 완전히 복원되지 않으며, 역사의 진실은 하나의 이미지 안에서 봉합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미완성이 그의 사진의 힘이다. 관객은 그 빈 공간을 통해 이미지 안으로 들어가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며, 결국 스스로 하나의 판단에 도달한다. 분명 무언가가 여기에 있었다. 무언가가 지나갔고,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바로 이 확신이 안종현 사진의 심증이다.

통로- #02 pigment print 155×190 2014

따라서 안종현의 사진에서 아름다움은 대상의 아름다움 자체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서로 다른 시간과 상태가 충돌하는 순간에서 발생한다. 변색된 플라스틱 꽃, 불탄 숲 사이로 올라오는 초록, 폐광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지뢰가 묻힌 평온한 풀밭, 눈을 감고 벽을 만지는 몸은 모두 아름답지만 동시에 불편하다. 아름다움과 불안이 하나의 이미지 안에 공존한다. 안종현은 파괴를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파괴 이후에도 세계가 계속 존재하고 변화한다는 사실에서 발생하는 낯선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이 때문에 그의 작업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은 폐허보다 대사(metabolism)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세계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흡수하고 변형한다. 산업은 폐허가 되고, 폐허는 식물의 기반이 되며, 기억은 사물이 되고, 사물은 폐기물이 되고, 폐기물은 다시 시간의 흔적이 된다. 인간이 만든 것과 자연은 서로 스며들고, 과거와 현재는 서로를 침식한다. 안종현은 이 느린 대사의 시간을 촬영한다.

플라스틱 꽃_그의 얼굴

그의 사진에서 시간은 단순히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쌓이고, 스며들고, 부식시키며, 다른 형태로 변한다. 장소는 그 시간이 퇴적되는 표면이고 사진은 그 표면에서 하나의 층을 떠내는 행위다. 그러나 사진가가 떠낸 것은 완전한 역사도, 완전한 기억도 아니다. 하나의 흔적일 뿐이다. 그리고 그 흔적 앞에서 관객은 다시 상상한다.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사물에서 기억으로, 장소에서 역사로, 폐허에서 미래로, 죽음에서 생성으로, 시각에서 몸으로 이동하는 것이 안종현 사진의 근본적인 운동이다. 그의 작업은 어느 한쪽에 완전히 도착하지 않는다. 항상 사이에 머문다. 그 사이에서 사진은 발생한다.

시작의 불 factory – #01, pigment print, 155×195, 2019

그래서 안종현의 작업을 관통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결국 이것일 것이다.

사라진 것은 어디에 남는가.

안종현은 이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는다. 대신 사라진 것들이 다른 형태로 계속 남아 있는 표면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 표면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확신하게 된다. 분명 무언가가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물질, 다른 풍경, 다른 몸, 다른 기억의 형태로 여전히 현재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

Red Room_traces

그것이 안종현 사진에서 잔여가 갖는 의미이며, 그의 사진이 만들어내는 가장 깊은 미학적 감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