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라스틱 꽃
2009년,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유리관에 박제된 플라스틱 꽃들을 마주했을 때, 나는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시들지 않는 물질을 빌려 1980년의 상흔과 기억을 영원히 방부 처리하려는 절박한 애도의 표상(表象)이었다. 민주 묘역의 이 특수한 추모 방식은 점차 일반 묘역으로까지 번져나갔고, 무덤 앞 유리관은 산 자가 죽은 자의 시간을 붙잡아두려는 일종의 진공 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영원을 약속받은 듯했던 이 인공의 기호들조차 시간의 맹렬한 엔트로피 앞에서는 무력했다. 오랜 세월 빛을 발하던 어떤 꽃들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생생한 아우라를 뿜어냈지만, 또 다른 꽃들은 인공물임에도 불구하고 처참하게 색을 잃고 바스라져갔다. 결코 시들지 않도록 고안된 플라스틱이 유리관 안에서 서서히 붕괴해 가는 모순적인 풍경. 그것은 인공적이면서도 가장 자연스러운 시간의 지층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기억과 감정은 결코 영속할 수 없다. 유리관 속의 꽃들은 결국 ‘특수 폐기물’이라는 세속적인 이름표를 달고 망각의 쓰레기장으로 폐기될 운명을 맞이한다. 나는 신성한 애도의 상징이 가장 무가치한 폐기물로 환원되는 이 서늘한 궤적을 기록한다. 이를 통해 영원함과 덧없음, 삶과 죽음,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붙잡으려 했던 사랑과 기억의 실체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