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미술 2020년 9월 작가 리뷰
안종현 징후 혹은 증후로서의 장소와 사진에 대하여 | 김현주

멀리 가까이 중간
1950년, 전쟁은 한반도의 지형을 바꾸었고, 전쟁 이후 용산은 미군의 거대한 기지로 재편되었다. 그와 함께 미군이 지은 최초의 정신병원이 서울 중곡동에 들어섰다. 전쟁이 남긴 정신적 상흔을 치유한다는 명목이었지만, 그곳은 단순한 치료 시설이 아니었다. 미군 기지는 전쟁을 지속하기 위한 거점이었고, 그 주변에서 발생한 기지촌, 그리고 정신병원은 모두 군사적 필요 속에서 기능했다.
기지촌은 단순한 주거지가 아닌, 전쟁과 냉전의 논리 속에서 탄생한 사회적 장치였다. 주한미군의 병영문화와 병사 복지를 위한 공간으로 기능한 이곳에서, 여성들은 성적 노동을 강요당했고, 사회적 낙인과 차별 속에 살아야 했다. 일부는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 정신질환을 앓았고, 결국 미군이 운영하는 중곡동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치료라는 명목 아래 이루어진 이 수용은, 실제로는 군사적, 사회적 통제를 위한 장치였을지도 모른다. 그 병원은 과연 치유의 공간이었는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감금과 배제의 공간이었는가?
미군이 떠난 자리에는 무엇이 남았는가? 기지촌은 하나둘 사라졌고, 그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은 기록되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중곡동의 정신병원은 역사 속에서 지워졌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붉은 벽돌 건물 일부는 지금도 그 자리에 남아 있으며, 시간이 덧칠한 채 사람들의 기억 속을 떠돌고 있다. 용산은 현재 ’국가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개발되지만, 그 안에서 흘러간 시간들은 삭제된 채 새로운 명명으로 덮이고 있다.
사진은 잊히지 않은 장소, 지워지지 않은 시간에 대한 몸의 반응이다. 폐허를 마주한 몸은 그 자체로 증언자가 되며, 우리가 삭제된 역사를 다시 호출하게 만드는 통로가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감각은 기억보다 앞서 역사를 말한다.
이러한 공간의 감각은, DMZ 근처의 미확인 지뢰 지역과도 연결된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지뢰처럼, 우리가 발 디딘 땅 아래에는 여전히 발화되지 않은 기억과 폭력이 잠재해 있다. 겉으로는 평화롭고 정돈된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지워진 이름들과 지워지지 않는 고통의 흔적이 존재한다.
미확인 지뢰 지역은 사람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인해 인간의 간섭 없이 자연은 고유의 시간과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그 땅에 직접 들어갈 수 없기에, 지뢰를 품은 채 고요히 존재하는 자연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폭력의 흔적 위에 피어난 풍경은, 지워지지 않은 역사의 무게를 은밀히 품고 있다. 그것은 무언의 증언이며, 침묵 속에서 잠재된 시간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