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노트
소년 단종 (Boy, Danjong), 2013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 영월의 소년이 어린 왕을 마주하다.”
영월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단종’은 단순한 역사 속 옛 임금이 아니다. 이 지역의 소년들은 단종이 승하했던 17세 무렵의 나이가 되면, 겹겹이 둘러싸인 산세 속 유배지에서 홀로 두려움에 떨었을 어린 왕의 고독을 자신과 은연중에 동일시해보는 묘한 감정을 공유하곤 한다. 나의 이번 작업 <소년 단종>은 바로 이 지점, 거대한 역사의 무게에 짓눌려 우리가 미처 온전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단종의 여린 ‘소년’ 시절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작업의 시작은 마치 예정된 운명처럼 다가왔다. 단종에 관한 작업을 구상하던 어느 날, 멀리서 걸어오는 한 소년을 우연히 마주쳤고, 순간 이상하리만치 그에게서 단종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놀랍게도 그 소년은 과거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했던 충신 엄흥도(嚴興道)의 후손(엄재룡 당시 16세)이었다. 더불어 작업을 진행하며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 역시 단종의 역사와 깊이 얽혀 있는 순흥 안씨 가문의 후손이다. 수백 년 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인물들의 후손이 21세기 영월에서 ‘단종’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이어지게 된 것은, 이 작업이 과거와 현재의 끊어질 수 없는 인연을 잇는 필연적인 매개체임을 말해준다.
작품은 단종의 실제 유배지와 영월 곳곳을 배경으로 617 파노라마 및 4×5 대형 필름 카메라를 통해 촬영되었다. 화면은 다양한 시각적 장치로 단종의 넋을 소환한다. 텅 빈 숲과 건물 앞에 부유하는 ‘하얀 풍선’으로 어린 왕의 보이지 않는 영혼을 암시하고, 6x17cm의 장대한 파노라마 프레임은 수면을 경계로 삼아 시공간을 위아래로 분할하기도 한다. 나아가 4×5 대형 카메라로 포착한 장면들에서는, 무심하게 지나가는 지역 관광객들과 함께 한가운데 붉은 곤룡포를 입고 우뚝 선 소년의 모습을 통해 시공간이 충돌하는 이질감과 철저한 고독을 포착한다. 파노라마 화면 상단에는 박제된 역사처럼 정면을 응시하는 ‘과거의 단종’을, 하단에는 일상복을 입고 거꾸로 선 ‘현재의 소년’을 데칼코마니처럼 배치했다.
이는 570년 전 소년 왕의 시간이 21세기 또래 소년의 모습을 빌려 현재로 소환되는 과정을 은유한다. 역사적 비극성을 넘어, 외로움과 두려움을 안고 있던 한 명의 온전한 ‘소년’을 시공간을 초월한 공감으로 담담하게 재해석하고자 한다.